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사진작가
생몰 1908년 8월 22일 ~ 2004년 8월 2일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경력 2003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설립
수상 1981년 프랑스 국립사진대상
결정적 순간의 미학
“카메라는 나에게 스케치북이며 영감과 즉흥성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고
사진촬영은 사물과 자기 자신에 대한 상당한 존경심을 필요로 한다.”
“카메라는 눈의 연장이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다.”
등등 유명한 격언들을 쏟아내었던,
평생을 인간의 시각과 비슷한 50미리 렌즈와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소형카메라를 고집하며,
촬영하는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절대로 크로핑(트리밍)을 허용하지 않아서
작품에 항상 검은 필름 테두리를 나타냈고, 연출사진을 거부했던 그의 사진미학은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다.
현대사진미학은 그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대 사진의 최고봉에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이 있었다.
2004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브레송은 사진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이다.
사진의 역사는 브레송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도 좋을 정도다.
또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가가 브레송일 것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발명과 보급은 이전의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획기적인 사진생활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대형, 중형카메라만 있던 시절에 소형카메라의 역사를 열었던
라이카 카메라의 발명은 지금의 디카의 발명과 같은 정도의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 이전의 카메라는 크기가 어마어마했으며, 조작이 불편한 관계로 스냅촬영은 불가능 했다.
쉽게 생각하면 십여년 전만해도 사진관에 가면 있었던 시커먼 천을 덮어쓰고
가족사진을 촬영하던 그런 카메라를 삼발이로 받쳐놓고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스냅사진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 컷 찍고 필름 갈고 또 한 컷 찍고 필름 갈고...
그러나 한손에 딱 들어오는 컴팩트한 크기의 라이카의 발명과 롤필름의 사용은
사진가의 시각을 넓혀 주었다.
사진가가 원하는 순간에 사진가의 눈과 동일한 시선으로 순간 포착이 가능해 진 것이다.
라이카의 발명으로 스냅사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화가를 꿈꾸었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의 보유자 브레송과
라이카의 운명적 만남은 위대한 사진가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결정적 순간”
흔히 생각하기 쉬운 순간포착의 물리적인 결정적 순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결정적 순간은 놀라운 오토포커스 성능과 어마어마한 연사능력 가진
현재의 카메라로 하면 더욱 결정적 순간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피사체와 정서적인 교감의 감흥이 일어나는
결정적 순간을 얘기한다. 정신적인 결정적 순간을 얘기하는 것이다.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의 미학과 함께 근대사진의 구성 미학을 완성한다.
그의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은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감탄사를 나오게 하며,
그의 디자인 감각, 예술적 재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진은
이제 그의 후배들을 다른 사진의 길을 모색하게 한다.
같은 방법으로는 더 이상 그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제 사진은 근대 사진에서 현대 사진으로 역사적 전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브레송은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세이무어, 조지로저 등과 함께
작년 한국을 찍고 전시도 했던 그 유명한 매그넘을 창립한다.
매그넘은 매체의 데스크에 종속되어 있었던 당시의 사진가들이
주체적인 존재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사진작업을 가능하게 하는데 기여했고,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 오고 있다.
생-라자르 역 후문, 파리, 1932
비가 온 뒤 물이 고인 웅덩이를 막 뛰어 건너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포착한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년)는
널리 알려진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이 사진에서 더욱 더 결정적인 것은 이 남자의 모습과 뒷배경 생 라자르역 담벼락에 붙은
서커스단 포스터의 댄서들의 동작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브레송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은 이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심코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생활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생 라자르역 뒤에서 한 중년 남자가 광고 포스트의 무희와 흡사한 동작으로
물이 고인 거리를 뛰어 건너는 순간을 찍은 이 사진은 오늘날 캔디드 사진의 성전으로 남게 되는'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 으로 사진역사에 있어 근대 사진미학의 최고봉으로 자리 잡는다.
프랑스,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1961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신문지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코트 깃에 손을 넣은 채 목재로 만든 문 옆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성성한 머리카락과 굵은 주름살, 길고 커다란 코가 인상적이다.
주름진 얼굴과 낡고 거친 벽이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자코메티는 마치 뼈대만 남은 것처럼 길쭉하고 앙상한 조각상을 즐겨 만들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던 자코메티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대면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늙은 조각가의 시선이 오래된 나무 문짝과 겹쳐져 서글픈 듯도 하고.....
고독함과 섬세함, 그리고 삶의 고통이 담긴 그의 조각 작품들처럼 그 모습 그대로 그가 서 있는 듯 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1961)
작업실을 막 나와서 비가 쏟아지는 길을 바바리 코트를 뒤집어쓰고 건너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담은 사진이다.
허리를 엉거주춤하게 구부린 채 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것은 어쩌면 삶의 고독한 모습이 아닐까! 자코메티는 소유욕이 없기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옷을 뒤집어 쓴 채 홀로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모습에서 자코메티의 무소유와 현실도피적인 삶의 자세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조각을 한 손으로 들어 전시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 넣었다.
나는 다섯 사람의 장정도 제대로 못드는 커다란 조각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
자코메티의 말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을 생각나게 한다.
마릴린 먼로, 미국 네바다주, 영화 ‘잘못 맞춘 짝'(The Misfits) 촬영장에서, 1960
공주처럼 앉아있는 기품있고 아름다운 여인.....
이 사진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뒤편에는 마릴린 먼로를 바라보는 시선(스타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을 배치하고,
화면의 절반 아래쪽에는 어느 쪽도 바라보지 않는 듯한 신비로운 시선을 던지는 중심인물을 담았다.
영화 세트장에서 찍은 이 사진은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상하로 양분된 구도로 위쪽의 사람들과 마릴린 먼로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리우드는 마릴린 먼로를 섹스 심볼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그녀는 희대의 섹스 심볼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브레송은 할리우드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시선으로 마릴린 먼로를 바라본다.
할리우드의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백치미와는 거리가 먼,
인형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운 한 여인이 다소곳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열망했던 남편도, 아이도, 가정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비극적인 여인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은 설명없이 사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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