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독일월드컵에서 거둔 우리대표팀의 성적은 1승1무. 우리나라 팬들이 보기에도 예상보다 좋은 편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토고를 이길 때만해도 그저 그런 평가를 내렸던 해외언론들도 우리가 프랑스와 비기자 보는 눈이 달라졌다. 긍정과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던 토고전과는 달리 지금은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언론들이 부러운 눈치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필자도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뿌듯한 마음을 느낀다.
해외언론들은 한국의 선전에 놀라움을 피력하는 한편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내용인
즉은 "세계적인 스타도 없고 국내파 선수들이 많은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가"다.
한국축구의 힘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데이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을 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 살면서 한국 축구를 지켜본
경험에서 나오는, 극히 개인적이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물론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계시겠지만)
우선 한국축구는 사실 전혀 선진적인 축구가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가 4강을 일궈내자 말 만들고 말 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한국이 세계 수준의 축구를 구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세련된 기술과 엄청난 개인기에 의존하는
유럽과는 달리 우리 대표팀은 상대가 한발 뛸 때 두세발을 뛰면서 상대를 제압한 체력축구였다. 어찌보면 축구가 처음 시작됐을 때의 원시적인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게 한국 축구의 모습이다. 그런 만큼 기술적이며 전술적인 축구를 하는 팀을 상대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대표팀에는 박지성 이영표 등 유럽파가 있지만 세계적인 기술보다는 투지와 체력이 장점인 선수들이다. 그리고 우리대표팀이 독일월드컵에서
보여준 축구 또한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두번째 특징은 헝그리 정신이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배를 불리기
위해서 끝까지 뛴다는 것이다. 우리 축구선수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유럽진출이다. 세계 축구의 변방격인 아시아에 뛰는 선수들이라면 모두 세계 축구의
중심지인 유럽에서 뛰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똑같다. 세계 축구계의 관심 속에 치르는 월드컵이야말로 우리 선수들에게도 유럽진출을 위한
드문 기회다. 물론 기회를 꼭 잡는다면 돈은 기본이고 명예까지 따아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는 결국 우리 선수들의 불굴의 투혼과 연결된다.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감독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선수들의 투혼은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한 바 있다.
세번째는 팀워크를 들
수 있다. 어느 한명 두드러진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승리를 위해서 마음을 합하는 것 말이다. 박지성·이영표 등도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지만 이들은 결코 팀워크에 해가 되는 독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철저히 팀을 위해서, 승리를 위해서 자기 위기체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박지성은 무리한 골욕심을 부리지 않고 동료를 기꺼이 돕는다. 이영표 또한 팀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희생한다. `잘 난' 척해도 되는 빅리거들이 이 정도니 국내파 선수들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감독과 선배의 지시에
따르는 위계질서도 우리 대표팀만의 힘이다. 유럽선수들은 동료는 기본이고 감독에 대해서조차 공개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선배나
감독의 말을 마치 `어명'으로 여긴다. 핌 베어백 코치는 최근 존 듀어든과 인터뷰에서 "유럽선수들은 전반에 졸전을 하면 하프타임 때 서로를
비난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전반에 부진해도 하프타임때 라커로 들어와 동료를 비난하지 않고 감독의 지시를 기다리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행동들이 권위주의로 흐르면 좋지 않지만 사회적인 규범내에서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팀내
질서를 잡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힘을 모으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우리가 토고에 비해서는 조직력·경험·팀 분위기 등에서 앞섰다.
그리고 프랑스와 비교해서는 개인기·조직력·전술수행능력 등은 부족했지만 스피드 · 정신자세 · 체력에서는 앞섰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1승1무의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스위스와 우리를 비교해보면 우리가 낫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은 애석하게도
거의 없다. 스피드·조직력·개인기·전술수행능력은 물론 경기장 응원 분위기 또한 스위스쪽에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FIFA 제프 블래터 회장의
조국이 스위스인 만큼 심판판정까지 우리에게 유리할 것 같지는 않다. 팀 분위기 정도만 엇비슷하다고 할까. 어쨌든 한국에게 스위스전은 무척 힘든
경기가 될 만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조건들이 불리하다고 모든 경기를 지는 것은 아니다. 축구가 워낙 변수가 많고 외의 결과가 많이
나오는 종목이라 이변도 무척 많이 발생한다. 우리가 스위스전 승리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게 우리에게 불리한 스위스전.
지극히 한국적인 축구로 당당히 싸워보자. 지고 이기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선수들이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만의 플레이를 맘껏
펼쳐보이는 것이 아닌가. |